파리 올림픽 개회식에서 여장남자(드래그 퀸)를 등장시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한 것, 세 명이 결혼 행진을 하는 장면, 남성과 여성, 성소수자로 구성된 이들이 서로 포옹하는 장면 등 동성애를 미화하며, 올림픽과는 무관한 그저 욕망을 표출하는 장으로 활용된 것에 대해 충격을 금할 수 없다. 결국, 이들이 말하는 자유는 함께 사는 다른 이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만 즐기면 되는 자유의 추한 모습이라 판단된다.
논란이 일자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해당 개회식 동영상을 삭제했고, 파리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어떤 종교계든 무시하려는 의도는 결코 없었다”며 유감을 표했다. 그러나 올림픽 개회식은 4년을 준비하는 만큼 올림픽의 정신에 맞는 기획과 연출이 가능함에도, 올림픽과는 전혀 상관없는 선정적 장면을 연출한 것은 인간의 욕구에 대한 자극과 종교에 대한 조롱의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전 세계 사람들이 보고 응원하는 스포츠의 장(長)인 올림픽에 ‘톨레랑스’라고 포장하여 받아들일 수 없는 것도 억지로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것도 일종의 폭력이요 폭거다. 퀴어축제가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서울광장이라던지, 길거리 행진을 통해서 표출하려는 것도 이와 유사한 표현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사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기에 서로에 대한 존중과 질서가 필요하다. 나의 자유가 가치롭기 위해서는 타인의 자유도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바울은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고전 8:12-13)"고 했다. 음식 하나도 믿음이 약한 자들을 실족하게 하는 것인지를 살펴야 하고, 그럴 가능성이 있다면 삼가는 것이, 진정한 관용의 정신인 것이다. 파리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무엇이 진정한 관용의 정신인지를 되새겨야 한다.
개인의 자유만 과도하게 강조하다 보면, 방종을 막을 수 없고, 이는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폭력의 형태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는 질서를 만들고, 법이라는 경계선으로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고귀한 가치를 보호해 온 것이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파리 올림픽 개회식을 자유와 관용의 표현이 아닌 폭력으로 규정하며, 이 같은 폭거에 단호히 맞서서 진정한 관용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천명한다. 국제올림픽위원회는 정제되지 않고, 개인의 욕구만 그저 표출되는 이러한 행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
2024년 7월 30일